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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도는 중국집인가? 그럼 금문고량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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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어떻게 살것인가
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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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도 중화 요리

유독 시내를 돌아 아니며 많이 봤던 중국집 이름,

" 금문도 " 회사 다니던 시절 역 근처에서 동일한 중식당이 3개나 있었다.

 

 

 

대체 금문도가 무슨뜻일까? 하고 궁금하던 차에 찾아보니  
대만의 금문도 섬 이름이었고 50-80년 냉전이 한참이던 시절에 
언론과 사람들에게 오르 내렸던 섬이었다.

 

 

대만 본토 보다 중국 본토가 더 가까웠던 

이 섬을 중국 공산당을 눈엣 가시 처럼 여겼다.

중국은 호시 탐탐 이 섬을 노렸다.

 

그리고 1958년 8월 23일 새벽

중화인민공화국 인민 군대는 역사에 남는 “ 금문포격전 ” 의 시작을 알린다.

 

그로부터 2개월,

중국 인민군의 포격, 포격, 포격,

대만 국민당군 또한 중국으로 대응 포격을 지속했다.

 

장장 2개월 금문포격전은 치열했었다.  

섬이 2미터 이상 주저 않을 만큼 격렬히 전개된 포격전이었다.

 

 

2개월의 포격전 이후에도 

근 20년간  80년 까지 포견적은 간간히 이어져왔었다.

 

 

그리고 이런 포격이 이어지는 

수 십 년의 세월,

 

벙커에 있는 병사들이 미치지 않고

죽을지 모르는 최전방의 현실을 잊고 달래기 위해서 지급했던  술이  

금문도의 상징이 되어 버린 술 [ 금문 고량주 ] 이다.

 

 

 

 

 

금문고량주는 58도 짜리가 가장 유명한데 
1958년의 금문 포격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 도수에 맞추어 제작한다고 한다.

( 물론 도수가 낮은 38도 고량주도 존재한다. )

 


수십년의 포격 기간 동안에 벙커에서 

엄청난 소음과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을 돕기위해 병사들에게 지급했던 고량주 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시 치열했던 58년도 금문포격전 의미하는

 58 도의 이 고량주는 대만을 넘어 세계적으로 널리 유통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치열한 포격전이 오가는 상황에서

병사들이 미치치 않도록 도움 주기위해 생산되었지만,

지금은 이제는 금문도의 상징으로 남아서 과거의 그 포격을 기억하는 술이되어 버린

금문고량주이다.

 

 

 

 

오늘 이런 배경을 알고,

다시 금문도라는 중국집 간판을 유심히 본다.

 

 

냉전 시대 대한민국 만큼이나 백척 간두에서

공산당에 맞 대응하고 있던 자유 진영의 동맹 대만 

 

그리고 그 대만의 가장 최전선 금문도를 과거의 우리 대한민국이 반공의 상징으로 선적한 덕분에 알게 모르게

뇌리속에 익숙해진 단어가 중국집 이름이 되어 널리 퍼진게 아닌가 ? 

 

하는 뇌피셜을 막연히 펼쳐본다.

 

 

** 보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 바랍니다.!

 

 

참고 자료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79164/1 
https://www.kyowontour.com/tourInfo/magazineView?mgznSeq=81 
https://namu.wiki/w/%EC%A7%84%EB%A8%BC%20%ED%8F%AC%EA%B2%A9%EC%A0%84?from=%EA%B8%88%EB%AC%B8%EB%8F%84%20%ED%8F%AC%EA%B2%A9%EC%82%AC%EA%B1%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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